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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의 공산성

국내여행

by 엄태환 2022. 11. 15.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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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은 백제의 수도가 웅진(현재 공주)이었을 때, 이곳을 지키던 산성으로 해발 110m인 정상에서 서쪽의 봉우리까지 둘러싼 포곡식 산성이며 성곽의 둘레 길이는 2.45km다.

공산성 성곽길의 걷다

 

2022. 11. 15.(화)

오늘은 늦가을의 정취를 느껴보려 공주 공산성의 성곽길을 걸어보려 집을 나선다.

공산성 주차장에 주차하고 금서루에서 시작하여 진남루-영동루-공북루를 거쳐 한바퀴 돌아본다.

 

2015년 7월 독일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유적지들 중 공주지역 2곳(공산성, 송산리고분군), 부여 4곳(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능산리고분군, 정림사지, 나성)이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

 

금서루에 올라가다보면  입구에 세워놓은 많은 비석들을 만날 수 있는데, 공주시의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송덕비와 제민천교 영세비 등 47기가 세워져 있다.

 

금서루는 공산성의 서쪽에 있는 문으로 1993년에 복원되었으며 공산성을 찾는 관광객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곳이다.

 

 

 

성곽길을 걸으면서 바라본 공주 시가지의 일부이다. 저멀리 가장 높게 보이는 곳이 두리봉이다.

 

쌍수정 앞은 지금 발굴조사 중이다.

백제왕도의 핵심유적으로 공주 공산성 추정 왕궁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하고 있는 곳이다.

 

쌍수정 앞의 발굴조사 현장

 

쌍수정

공산성 진남루 북서쪽에 있으며, 조선 영조 10년(1734)에 처음 세운 정자이다.

조선시대 인조가 이괄이 일으킨 반란(1624)을 피하여 공주로 잠시 피난 왔을 때, 이곳에 머물렀던 일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후 여러 차례 보수되어 오다 1970년에 전체적으로 해체·복원하였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쌍수정 앞에 있는 나무의 붉은 단풍은 아직도 가을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조선의 제16대 왕인 인조는 이괄의 난을 피해 공산성에서 6일간 머물렀는데, 당시 인조는 두 그루의 나무 아래에서 난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인조는 난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자신이 기대었던 두 그루의 나무, 즉 쌍수에 정3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공주는 인절미의 고장이라고 한다.

이괄의 난을 피해 공산성에 온 인조에게 성안 마을 임씨가 떡을 해 바쳤는데, 그 맛이 하도 좋아 임금이 '임절미'로 불렀고 이것이 오늘날 인절미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쌍수정 앞에는 가을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예전에 공주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들었던 진남루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산성시장이 있고 왼쪽으로 가면 성안마을의 영은사가 있다.

 

산성동에서 진남루에 올라오는 길목에도 늦가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날이었다.

 

진남루에서 영동루에 올라가는 성곽길이다.

 

성곽길을 따라 올라갈 수 없다.

성벽이 유실되어서 현재 공사중이었다. 우회를 할 수 밖에

 

 

12각 건물지였다고 추정하는 곳이다.

공산성 안에는 12각으로 지은 둥근 2채의 건물 터가 남아 있다. 12각으로 지은 건물은 대개 가뭄이 심할 때나 전염병이 돌거나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곳이라 한다.

 

12각 건물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하늘에 대한 제사 공간이었다는데 이곳은 8-9세기(신라통일기)에 사용했을 것이라는데...모든 게 궁금할 뿐이다.

 

공산성 28칸 건물 터였다고 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현재의 공주는 9주 가운데 웅천주가 설치되었던 곳으로 이 무렵에 만들어진 관청 건물이 아니었을까 추정하는 곳이라 한다.

 

임류각 앞에서 만난 모습은 붉음으로 치장한 단풍이 가을의 절정임을 말해 주고 있는 듯 했다.

 

공산성 영동루는 공산성 4개 성문 중에서 동쪽 문루다. 1980년대 발굴조사 당시 문 터와 문 양옆에서 문을 지탱하고 있던 받침돌을 확인하여 성문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다시 세웠다고 한다. 문루의 이름은 알 수 없어서 2009년 시민들의 공모로 영동루라고 지었다.

 

 

진남루에서 영동루로 올라오는 성곽의 일부가 훼손되어 성곽길은 일부분이 통행이 금지되어 우회해서 올라와야 한다.

 

 

공산성의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진 정자는 광복루다.

 

충남 공주시 옥룡동 소재의 은개골은 공산성과 옥녀봉성 사이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발굴조사 결과 백제시대의 집터와 무덤 등이 조사되어 현재 유적지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으며 유적지 주변은 4계절 야생화 꽃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공산성성곽길을 따라 걸으며 만나는 금강

 

 

 

금강변으로 이어지는 공산성 성곽길의 계단은 경사도가 심해 오르락 내리락할 때 조심해야 한다.

 

영은사가 바라보이는 근처의 성곽길을 내려오면서 만난 멋진 단풍

 

저 아래에는 연지와 만하루가 보이고

 

 

 

 

강변에는 연지와 만하루가 있고 뒤편에는 영은사가 자리하고 있다.

 

영은사

 

만하루는 연못과 금강 사이에 있는 누각이다. 공산성을 방어하는 군사적 기능과 함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기능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지는 공산성 안에서 사용하는 물을 저장하던 연못이다.

 

 

영은사 앞에 있는 감나무에는 까치밥이 너무 많이 매달려 있구나.

 

공산성 공북루는 지금도 공사중이다.

공산성의 북쪽 문루로 금강의 남쪽과 북쪽을 오가는 남북 통로의 주 출입문이었다. 충청감영을 충주에서 공주로 이전하면서 1603년(선조 36)에 공산성을 크게 고쳐 쌓았고, 이때 공북루와 그 옆에 월파당을 함께 지었다. 여러 차례 고쳐 지었으며, 월파당은 1954년에 철거되었다.

 

성곽길에서 만나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이곳을 걸을 때마다 氣를 받기위해 늘 한번은 껴안아 보곤 한다.

 

 

 

공산정이다.

공산정은 공산성 서북쪽 정상에 있는 정자이다. 공주에서 부여방향으로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금강철교 등 공주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지금의 공산정은 1970년대에 새롭게 만든 것으로 이전에는 유신각 또는 전망대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공산성 성곽길에서 바라본 금강 그리고 금강을 가로지르는 왼쪽의 백제큰다리,오른쪽엔 금강교가 보인다.

 

 

 

금서루를 지나면서 오늘 성곽길 걷기는 마무리한다.

 

금서루 앞에 세워진 비석군들도 이곳을 찾는 이들에겐 인증 필수 장소로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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