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찾은 경주
낯설지 않은 이유는 천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기 때문이리라.
도로가 넓어지고 문화유산 주변 경관이 정비되고 산뜻하게 포장했지만 옛날의 정취가 그대로 살아있는 역사도시이다.
세계에서 천년이상 유지된 왕조는 단 두곳 밖에 없다.
로마와 신라이다.
오늘은 그 중 하나인 신라의 수도 경주를 찾아 한바퀴 돌아볼 생각이다.(2015.2.26.)
아침 일찍 출발하였지만 경주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 무렵이다.
대왕암을 먼저 둘러보고 식당을 찾아보자
오늘 둘러보려고 하는 곳은 감포 해변에 있는 대왕암 - 감은사지 3층석탑 을 둘러보고 불국사 - 석굴암 - 안압지 - 분황사 탑 - 대릉원 - 첨성대를 거쳐 포석정 순이다.
▼ 통일기 신라의 체제 정비에 나선 신문왕.
아버지 문무왕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다.
아버지가 죽은 후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동해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 감은사(感恩寺)를 세웠다.
그러나 지금은 절터만 있고 두 개의 탑만이 남아 있다.
통일기 신라의 전형적인 2단 기단에 3층으로 조성된 탑이다.
동탑과 서탑의 아름다운 모습에 취해본다.
▼ 공주를 떠나 첫번째 쉰 곳은 여기
▼ 두번째 쉰 곳은 평사휴게소
▼ 구버전의 네비 안내를 받은 덕(?)에 토함산의 옛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감포해변에 도착.
이곳엔 대왕암(문무대왕릉)이 있다.
경주에서 이곳까지 토함산 터널(4.3km)이 최근 개통되어 빠른 길로 올 수도 있는데....
삼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김춘추(태종 무열왕)
그의 아들 문무왕은 통일을 이루고 세상을 떠난다. 죽기 전의 유언이 '내 죽어서 동해를 지키는 한 마리의 용이 되리라.'
그래서 아들 신문왕이 부친의 유해를 이곳에 안치하였다고 한다.
이곳이 대왕암 또는 문무대왕 해중릉이다.
새우깡에 길들여진 갈매기가 떼로 몰려와서 과자를 달랜다.
▼ 감은사지 삼층석탑 중 동탑
신문왕은 자신의 아버지 유해를 동해의 대왕암에 안치하고 나서 이곳에 부친의 은혜에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 절을 세웠다고 한다.
절은 남아있지 않지만 멋진 탑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 감은사 터 발굴 작업이 진행중
▼ 토함산 자락에 있는 천년 고찰 불국사.
신라가 삼국통일 후 불교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의도로 세운 절이다.
왜란때 불에 탄 것을 복구하긴 했지만 옛 모습은 아니라 한다.
이곳 주차비 2,000원(차량 1대)
입장료 4,000원(개인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관리되고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이들에겐 너무 과한 비용이다.
입장료 1,000원 정도라면 부담없을 듯 한데...
정부와 문화재청에서 깊은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 토함산 석굴암을 찾아 올라가는데...
또 주차료 2,000원에 입장료 4,000원의 거금을 내야한다.
일행중의 한사람이 하는 말 '그냥 돌아갑시다'
▼ 안압지(기러기와 오리가 많이 몰려드는 연못이라서 그렇게 불렀단다.)
옛날에는 달이 뜨는 모습이 비춰지는 못이라 해서 월지라 했단다.
이곳에 주차료는 없다. 주차장 정비하는 걸 보니 얼마쯤 지나면 주차비 받으려 할 것이다.
입장료는 1인당 2천냥이다.
옛 신라 귀족들의 호화스런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안압지...
천년의 신라가 왜 분열되고 망하게 되었을까 생각하게 해주는 곳이다.
▼ 대릉원을 찾는다.
입장료와 주차비가 짜증나게 하지만 둘러본다.
큰 무덤이 있는 곳. 천마총과 미추왕릉 그리고 30여기의 큰 무덤이 있는 곳이다.
▼ 대릉원 가는 길에
▼ 대릉원에 이런 고분이 30여 기가 조성되어 있다.
▼ 신라 고분양식의 전형을 알게해 주는 천마총
무덤의 바닥에서 천마도가 발굴되어 그렇게 부른다.
▼ 대릉원은 나와서 포석정으로 향한다.
신라 귀족들의 풍류와 사치의 극을 보여주는 곳이다.
이곳을 찾은 시간이 오후 5시쯤.
입장료와 주차료 때문에 다시는 경주를 찾지 않겠다는 얘기를 하니 문을 닫으려고 하던 매표원이 하는 말
'그냥 들어가서 보세요'
갑자기 횡재를 한 듯 하다.
여기까지 둘러보고 이젠 저녁을 해결하러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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