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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사람의 한양도성 따라 걷기(인왕 북악산)

수도권산행

by 엄태환 2016. 5. 9.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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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연휴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한양도성 주변을 걷기로 한 날이다.

인왕산에서 북악산 자락으로 연결된 능선을 따라 조성된 한양의 성곽길을 따라 걷는 것이다.

한양에 간다는 설레임으로 새벽녘 이른 시간에 일어나 베낭을 꾸리고 버스에 올라 서울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파란 하늘이 반겨준다.

서울은

늘상 뿌연 미세먼지로 덮혀있는 회색 도시로 생각했는데...

오늘은 시골사람의 한양 나들이를 축복해 주는 듯이 푸르른 날이다.

<인왕산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산행 일시 : 2016. 5. 8.(일)

⊙산행지 : 인왕산& 북악산

⊙산행 코스 : 사직공원 - 인왕산 - 시인의 언덕 - 창의문 - 북악산 - 청운대 - 숙정문 - 말바위 - 와룡공원

⊙산행 거리 및 소요시간 : 7km정도, 4시간 20여 분(인증하면서 천천히)

⊙함께한 사람 : 한마음 산악회원들. 어버이날이라서인지 참여인원이 많지 않았음.

 

복원된 서울 도성 중에서 오늘 걷는 곳은 사직공원에서 출발해서 인왕산을 거쳐 4코스 - 3코스의 북악산으로 해서 와룡공원까지이다.

 

시골사람들의 한양 나들이

오늘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는다.

 

새로 복원된 한양 도성길을 따라 인왕산으로 올라간다.

 

 

 

수도 서울의 명산에 있는 이정표치곤 격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인왕산 정상인데 표지석이 없다.

세종실록지리지나 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에 보면 '인왕산의 높이는 5,440척이 넘고 북악산의 높이는 6,470여 척이 넘는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기록상으로 보면 인왕산은 1,760m(실제 높이 389m), 북악산은 1,962m(실제 높이는 342m)로 나와 있다.

왜 기록에는 산의 높이가 터무니없이 높게 표기되어 있을까?

아마 조선시대에는 성의 전락적 기밀 유지를 위하여, 혹여 적에게 기밀이 유출된다 하더라도 엄청나게 높은 산으로 알 수 있게 하려고 과장한 것이라고 한다.  선조들의 안보에 대한 묘책으로 과장했을 듯 하다.

오늘날 서울을 감싸고 있는 4개의 산은 인왕산, 낙산, 남산, 북악산이다.

인왕산 정상에서 인증하고...

 

인왕산에서 인증하고 창의문 방향으로 걸어간다. 성곽 옆으로 정비해 놓은 길을 따라서

이러한 성곽을 축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동원했을까?

 

성곽 옆으로 난 길의 경사가 급한 곳은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경사가 완만한 곳은 들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창의문에 가기 전에 만나는 시인의 언덕이다. 이곳엔 윤동주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오늘은 여기서 점심을 먹는다.

 

 시인의 언덕에서 까치집을 보고

 

창의문(자하문)

홍화문, 광희문, 소덕문과 더불어 서울 성곽의 4소문의 하나이다.

경복궁을 내리 누르는 위치에 있다는 풍수지리의 설로 인해 문은 세웠으나 수백년 동안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창의문 안내소에서는 신분증을 제시하고 서류를 작성 제출하고 확인이 끝난 후에야 통행증을 배부해 준다.

신분증이 없으면 되돌아가야 한다.

창의문을 지나 백악산에 오르는 길은 경사도가 심하다.

 

자북정도(紫北正道) - 자하문 북쪽으로 난 정의로운 길이란 뜻일 듯하다.

정도(正道)는 국가 안보라는 뜻인 듯

주변 곳곳엔 유니폼을 갖춰 입은 수방사 대원들이 보초 근무를 서고 있으면서 감시(?)하고 있다.

청와대 뒷편의 북악산 자락은 노무현 정부때 시민들에게 개방된 이후 지금까지 통행증을 발급받은 자만이 통행할 수 있단다.

 

북악산에 올라가면서 바라본 북한산 모습

 

북악산에 올라가면서 뒤돌아 본 인왕산 정상(왼편)

 

북악산(백악산)엔 정상 표지석에 세워져 있다.

 

세종실록지리지나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보면 백악산(북악산, 경복궁의 진산)의 높이는 6,470여 척(1,962m)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실제 높이는 342m이다.

높이의 과장은  단순한 뻥이 아니라 한양을 방어하기 위한 고도의 군사적인 계략으로  표시했다고 알려진다.

 

좋아하는 선배, 후배와 함께

 

 

 

1.21사태 소나무라고 한다.

1968년 북한의 124군 부대의 청와대 습격 당시 접전이 펼쳐졌던 지점에 있는 소나무엔 지금도 탄흔이 남아있다.

 

 

청운대

 

서울 도성의 북쪽에 있는 북대문인 숙정문을 성 옆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숙정문

한양 4대문의 하나로 북쪽의 대문이다. 동, 서, 남대문과는 달리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험준한 산악지역에 위치해 실질적인 성문 역할을 하지 않았다. 처음엔 소지문으로 지으려 했으나 한양 북향이 음기를 품고있어 그 기를 꺾고자 꾀할 정, 편안할 정(靖)자가 들어가는 숙정문으로 지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북쪽의 문을 열어 놓으면 오랑캐가 쳐들어 오니까 항상 닫아 놓았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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