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보는 맑은 날씨다.
오늘은 혼자 산행이다.
전라도 김제, 완주군의 모악산을 둘러보자.
김제평야의 동쪽에 우뚝 솟아 호남평야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모악산(793.5m)은 전주, 김제 일원의 근교산으로 김제군 금산면과 완주군 구이면에 걸쳐 있는 군립공원이다. 유명한 금산사와 함께 이 고장 사람들의 당일 산행지로 각광 받는 산이다. 산 정상에 어미가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형태의 바위가 있어 ‘모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호남평야의 젖줄 구실을 하는 구이저수지·금평저수지·안덕저수지와 불선제·중인제·갈마제 등의 물이 모두 이 곳 모악산으로부터 흘러든다.
모악산 정상에는 큰 송신탑이 우뚝 버티고 있어 정상일대가 출입통제되는 지역이어서 불편하다.(얼마전까지만 해도 송신탑 아래까지만 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송신탑 옥상까지 올라갈 수는 있다.) 따라서 처음 등산하는 사람들은 다소 실망하기도 한다.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이 흐드러지게 핀다. 산아래 금산사는 호남 4경의 하나로 10종의 각종 주요문화재를 갖고 있다. 대원사, 수왕사, 심원암, 청연암등의 사찰이 있다.(한국의 산하에서 따옴)
오늘은 완주군 대원사를 들머리로 하여 수왕사쪽으로 출발이다.(2014.8.23)
정상 부근 송신탑 아래에 있는 정상석이다. 철조망에 가려져 있어 찾아보기 쉽지 않다.
전북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에서 시작하는 등산로이다.
선녀다리 아래엔 최근의 잦은 비로 인해 수량이 엄청나게 풍부하다. 물놀이 나온 사람들도 제법 많다.
정상 근처에서 바라본 정상엔 한국방송공사의 송신탑이 자리잡고 있다.
올라올 땐 수왕사길 따라 오다가 샛길을 찾아 왔는데 주요 탐방로에 표시가 되어있지 않다. 빙빙 돌아 올라와서인지 오르는데만 2시간이 소요되었다. 내려갈 땐 무제봉-수왕사-대원사 방향으로 정해야겠다.
지금은 KBS송신탑 옆으로 계단이 나있어서 정상까지 올라갈 수는 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출입금지구역이었다나?
송신탑 건조물 옆에 있는 정상석 표지판
하필 모악산 정상에 송신탑을 세웠을까?
하산길에 막걸리 파는 아저씨가 있다.
한잔 술이 2,000원. 꿀맛이다. 꽈리고추와 된장, 쌈장, 고추장은 무료란다.
술한잔 하려보니 50,000원짜리 지폐밖에 없어 주인에게 잔돈없어 어떻하냐 물으니 그냥 먹고 가란다. 10년 이내에 이곳에 와서 갚으면 된단다. 인심좋은 아저씨다.
돌탑에 작은 돌 하나 올려놓고 부처님의 자비가 깃들길 빌어본다.
대원사의 단아한 모습이 보기 좋다.
삼국통일 직전인 660년(백제 의자왕 20)에 대원(大原)ㆍ일승(一乘)ㆍ심정(心正) 등의 고승이 함께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이들은 고구려에서 백제로 귀화한 열반종의 개산조(開山祖) 보덕(普德)의 11제자들로서, 스승으로부터 열반종의 교리를 익힌 뒤 스승이 있는 고대산(孤大山, 혹은 高達山)에다 절을 창건한 것이라 한다. 고대산은 지금의 모악산 줄기인 듯하며, 당시의 절 이름은 대원사(大原寺)였다. 이 같은 내용은 『삼국유사』 권 제3 「보장봉로 보덕이암(寶欌奉老 普德移唵)」조에 기록된 것이다.
그 뒤 1597년(선조 30)의 정유재란 때 대부분 건물이 불타 없어졌으나, 1606년(선조 39)에 진묵 일옥(震?一玉) 스님이 다시 중창하였다. 진묵스님은 조선시대 중기의 유명한 고승으로서, 대원사는 이때 대규모로 중창되면서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였다. 1733년(영조 9) 동명 천조(東明千照) 스님이 중창하였고, 1886년(고종 23)에는 건봉사(乾鳳寺)에 머물고 있던 금곡인오(錦谷仁旿) 스님과 함수산(咸水山) 스님이 이곳으로와 중창불사를 이루었다. 스님들은 대웅전을 중건하고 명부전을 고쳐짓고 칠성각을 새로 지었으며, 산내암자인 내원암(內院唵)에 있던 염불당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조선시대 말에는 증산교(甑山敎)를 개창한 강일순(姜一淳)이 이곳에 머무르며 도를 깨우쳤다고 한다.
대원사 대웅전 앞에는 보기 드문 사사자 5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통일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겠다.
모악산 하산길에 멋진 계곡의 물...풍덩 빠지고 싶다.
등산로 초입에 세워진 김양순 할머니 선덕비다.
김양순 할머니는 1896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서 일제강점기에 숱한 참상을 경험하신 분이다. 젊은 시절, 모든 사람들을 잘 살게 해달라는 원력(願力)을 세우고, 수행할 곳을 찾아서 전국을 주유하다가 37세에 모악산 아래 마을에 와서, 현재의 천일암 터에 자리를 잡고 초근목피하면서 수행을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건물을 지어 ‘동곡사’라고 이름하였는데, 동곡東谷(or 동골)의 의미는 ‘모악산 선도의 계곡은 동쪽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할머니는 영안이 열린 분으로 늘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동곡사에 시주한 쌀로 밥을 지어서 궁핍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돈도 주었습니다. 근처 마을 사람들은 춘궁기에 할머니의 도움을 받았고, 6․25 전쟁 중에는 쫓기는 사람들을 숨겨 주었습니다. 또한 정신적 병으로 고생하는 많은 사람들을 고쳐 주기도 하였다.
할머니는 “모악산에서 3성 7현이 나온다. 마지막 성인이 출현하면 새로운 법이 세상에 알려질 것이고, 전 세계에서 오색(五色) 인종이 모악산에 몰려들게 될 것이다. 그러면 민족통일이 이루어지고 인류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며, 앞으로 때가 되면 하늘에서 돌들이 날아와 성을 쌓고, 황금빛 기와가 덮인 궁궐이 지어질 것이다.”라는 예언을 자주하였다고 합니다. 천황바위에서 1,000일 수행 중에 ‘이 곳은 진인眞人이 날 터이니 이 터를 잘 지켜라’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후 할머니는 숱한 어려움과 함께 동곡사가 철거 되려 할 때, 목숨을 걸고 동곡사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1980년(84세) 여름, 청년 이승헌 총장님이 수행을 위해 모악산 동곡사를 찾아옵니다. 김양순 할머니는 한 눈에 총장님의 뜻을 알고, 수행에 매진할 수 있도록 극진한 정성으로 보필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서기 1987년 음력2월28일, 91세의 나이로 입적하셨습니다. 묘지는 천일암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전라북도 선도 문화연구원 자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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